쌀로 100번 연속 이긴 사나이, 혼마 무네히사

도지마 쌀 거래소가 선물시장의 원형을 만들었다면, 그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따로 있다. 사카타 출신의 쌀 상인, 혼마 무네히사다. 그는 1717년 데와 지역에서 태어나 23세에 사카타의 상인 집안 혼마 가문의 양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거래의 신', 또는 '시장의 신'이라 불렀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100번 연속으로 수익을 낸 거래를 기록했다. 그리고 오늘날 전 세계 투자자들이 쓰는 캔들차트를 고안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금융과 역사를 함께 보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인물의 실제 기록과 전설을 구분해서 살폈다. 확인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지만, 그가 남긴 원칙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는 거래 기록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이 있다.

사카타 항구의 젊은 쌀 상인

사카타에서 오사카까지

무네히사는 일본 북부 사카타의 쌀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사카타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곡물 항구 중 하나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쌀이 배에 실려 나가고, 가격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자랐다.

그가 도지마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거래를 시작한 것은 20대 중반이었다. 도지마는 오사카에 있었고, 사카타는 약 600km 떨어져 있었다. 그 거리에서 시세를 실시간으로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는 사카타와 오사카 사이에 약 6km마다 연락 담당자를 배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낮에는 깃발과 연기, 밤에는 등불로 시세를 전달하는 네트워크였다. 이는 오늘날 데이터 전송망의 원시적 형태로 볼 수 있다.

사카타에서 오사카까지 이어진 시세 전달망

"시장에서 이기는 것은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닌, 더 빨리 아는 것이다."

1755년, 한 권의 책

1755년, 무네히사는 《삼원금천비록(三猿金泉秘録)》이라는 책을 남겼다. 영문 제목은 The Fountain of Gold — The Three Monkey Record of Money다.

이 책은 시장 심리를 다룬 최초의 저작으로 평가된다. 그는 쌀 가격이 단순한 수급이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탐욕과 공포가 가격을 만들고, 그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세 원숭이'는 전통적인 삼원(三猿) 상징을 빌린 것이다.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보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판단을 지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카타 5법

무네히사는 자신의 거래 원칙을 '사카타 5법'으로 정리했다. 삼산(三山), 삼천(三川), 삼공(三空), 삼병(三兵), 삼법(三法)이다.

각각은 시장의 국면과 대응을 나타내는 패턴이다. 오늘날 캔들차트에서 쓰이는 여러 패턴이 여기서 출발했다. 예를 들어 '삼산'은 세 개의 봉우리가 형성되며 추세 전환을 암시하는 형태로, 현대의 헤드앤숄더 패턴과 유사하다.

캔들차트의 기원이 된 장부

중요한 것은 그가 패턴을 암기용 도구로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패턴 뒤에 있는 인간 심리를 읽으라고 했다. 산이 세 개 생기는 이유, 그 뒤에 하락이 오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래의 신이 남긴 숲

무네히사의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오래 머문 지점은 그의 거래 기록이 아니다. 그의 가문이 사카타에 남긴 숲이다.

무네히사의 조카이자 혼마 가문 3대 당주인 혼마 미쓰오카(1732~1801)는 1758년부터 사카타 서쪽 해변에 소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일본해에서 불어오는 강풍이 모래를 날려 논밭을 덮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1772년부터 1781년까지 해안선 20km에 걸쳐 방풍림을 조성했고, 이 작업은 그 한 세대에 끝나지 않았다.

혼마 가문은 이후 대를 이어 식림을 계속했다. 오늘날 사카타 해안에는 길이 약 34km에 달하는 흑송림 그린벨트가 남아 있다. '하얀 모래와 푸른 소나무'라는 뜻의 백사청송(白砂青松)이 그 풍경을 일컫는 말이다.

사카타 해안의 흑송 방풍림

미쓰오카는 방풍림 외에도 기근 구제, 하천 정비, 번(藩)의 재정 재건에 사재를 썼다. 사카타 사람들은 그를 기려 1925년 광구 신사를 세웠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 "본간 님에게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영주처럼 되고 싶다"는 말이 돌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리고 이 정신은 후손으로 이어졌다. 혼마 가문은 메이지 시대에 가문 자제 교육을 위한 사숙을 세웠고, 학교 건축과 다리 놓기, 적십자사와 제생회에 기부를 이어갔다. 작위를 내려준다는 내시를 받고도 사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모든 것이 무네히사 한 사람의 공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쌓은 부가 가문을 통해 지역으로 흘러들어간 것은 분명하다. 거래로 벌어들인 돈이 숲이 되고, 숲이 농지를 지키고, 농지가 사람을 먹였다. 2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숲은 서 있다.

"재산은 쌓는 순간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심은 숲은 백 년을 산다."

글을 쓰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무네히사가 100번 연속 수익을 냈다는 전설보다, 그의 가문이 34km의 숲을 남겼다는 사실이 더 오래 남는다. 시장에서 이기는 법을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이긴 뒤에 무엇을 남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것

무네히사의 교훈은 세 가지다.

첫째, 정보가 곧 우위다. 그는 600km 거리에서 시세를 가장 먼저 아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오늘날 데이터 속도 경쟁의 원형이다.

둘째, 패턴보다 심리다. 그는 캔들 모양을 외우게 하지 않았다. 그 뒤에 있는 탐욕과 공포를 읽으라고 했다.

셋째, 기록이 자산이다. 그는 자신의 거래 원칙을 책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 기록은 250년이 지난 지금도 읽히고 있다.

피터 린치는 "자신이 아는 것에 투자하라"고 말했다. 무네히사는 쌀을 알았고, 쌀이 움직이는 방식을 알았다. 그것이 그의 우위였다.

실천 팁

차트를 볼 때 캔들 모양만 외우지 마라. 그 캔들 뒤에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 상상하라. 왜 여기서 매수세가 몰렸는지, 왜 여기서 매도세가 나왔는지. 무네히사가 250년 전에 던진 질문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상품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모든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본 콘텐츠는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작성자는 공인 투자 자문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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